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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ture_/가구, 시대의 아이콘

시대를 앞서간 명작, 강철 왕관을 두른 LC2

by 잔망23 202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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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스타에서 감성 좀 탄다는 핫플레이스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의자가 있다. 까만 주사위 같은 1인용 소파. 정사각형의 네모난 형태로 팔걸이와 등받이의 높이가 같고, 푹신한 착석감을 자랑한다. 여기에 모양을 잡아주고 있는 은색 스틸이 포인트다. 모던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무게감 있는 조형미가 돋보이는 이 소파는 1928년 르 코르뷔지에가 발표한 'LC2 Petit Confort 쁘띠 콩포트(작은 편안함)' 이다.

 

인조가죽과 이음새가 있는 스틸로 만든 카피본으로라도 LC2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옮겨오고 싶었던 걸까. 등받이가 낮아 그다지 편안하지도 않음에도, LC2는 바실리 의자나 LC1과 짝을 이뤄 흔하게 볼 수 있다. 확실히 이런 아이코닉한 디자인 가구와 조명들이 (카피든 아니든) 곳곳에서 눈에 띄는 걸 보면 확실히 한국도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모양이다. 이런 디자인 가구들을 발견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가구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LC2 (출처: Cassina 홈페이지)

 

 

 

LC2가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그다지 환영 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이 소파는 르 코르뷔지에 혼자서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사무소에서 일하던 피에르 잔느레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공동 작업물이다. 다른 LC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LC는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이 아니라 그의 건축사무소를 뜻한다고 봐야한다. 모더니즘의 정수라고 극찬 받는 LC 시리즈는 특히 샤를로트 페리앙의 손이 많이 닿았다고 알려져 있다. 건축에서는 공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구는 건축에 못 미친다는 평을 듣던 르 코르뷔지에가 새롭게 영입한 디자이너가 샤를로트 페리앙이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렵던 당시, 샤를로트 페리앙은 르 코르뷔지에를 직접 찾아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미 발표한 작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던 유망한 디자이너였지만, 어찌나 멋지고 당돌한지! 샤를로트 페리앙의 합류로 르 코르뷔지에 사무소는 가구 디자인을 선도하게 된다. LC 시리즈는 샤를로트 페리앙이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강철 파이프라는 새로운 소재를 도입해 디자인한 시리즈이다. 

 

 

페리앙은 LC2를 '쿠션 바스켓' 이라고 설명했다. 강철관으로 만든 바스켓에 네모난 쿠션을 끼워 놓은 형태니까(!). 건축 사무소에서 만든 소파 답게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똑바른 정사각형의 심플한 조형미는 소재의 파격과 더불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곧 사장된다. 시대를 앞서가는 제품이었고, 일반화되지 않은 강철 파이프를 대량 생산하기에는 어떻게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수지가 맞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 35년이 지난 1965년, 르 코르뷔지에의 가구를 재생산할 권리를 가진 후원자가 디노 가비나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에게 LC2의 복각을 의뢰했다. LC2 디자인의 포인트인 강철 파이프를 매끄럽게 구부러뜨리는 것인데, 이런 기술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비나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카시나에게 이 작업을 맡기게 된다. 그렇게 카시나는 LC2라는 시대를 앞서간 명작을 세상에 다시 내놓게 된 것이다. 

  

LC2가 세련된 공간의 필수품으로 대중에게 자리매김한 것은 스티브 잡스 덕분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사용한 소파는 LC3였다. LC2와 함께 발표된 LC3는 디테일에 차이가 있다. 좌방석에 두 개의 쿠션이 들어간 LC2와 달리 이중 쿠션이 아닌 하나의 두꺼운 쿠션으로 대체되었고, 시트의 크기도 더 넓다. 구조적 조형미는 LC2에 비해 덜 하지만, 앉았을 때 더 편안한 것은 LC3 쪽이다. 그래서 그런지 별칭도 'Grand Comport(위대한 편안함)'이다. 

 

 

따뜻한 느낌의 가죽과 차가운 강철 파이프의 오묘한 조화와 꼭 끼워 맞춘 듯 변태적인 정육각형의 아웃라인과 달리 푹신한 쿠션감. 시대를 앞서간 이 마스터피스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사랑 받을 것이 분명하다. 자칫 세상에서 지워졌을지도 모를 이 소파를 복각 의뢰한 스위스인 후원자와, 자신의 회사에서 불가능한 기술력임을 알고 선뜻 카시나에게 넘긴 가비나, 그리고 멋진 모습으로 LC 소파를 다시 세상에 내놓은 카시나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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