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의 빨간 입술 모양. 보카 (Bocca) 소파는 1970년 이탈리아의 예술 스튜디오 Studio 65에서 디자인했다. 초현실주의와 70년대 팝아트에 영향을 받아 컬트의 상징이 된 보카 소파는 통통 튀는 팝아트적인 외형으로 메릴린 먼로의 입술을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다. 팝아트 하면 앤디 워홀, 앤디 워홀 하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메릴린 먼로의 초상이 떠올라서일까? 그러나 입술의 주인은 따로 있다. 보카 소파는 1936년 살바도르 달리의 매 웨스트 립 소파(Mae West Lips Sofa)를 모티프로 탄생했다.
초현실주의의 대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에드워드 제임스라는 후원가의 의뢰로 매 웨스트 립 소파를 만들었다. 1907년부터 1980년까지 활동한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매 웨스트(Mary Jane West)의 입술 모양을 따서 만들어 이름 역시 그녀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달리의 위트가 녹아 있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스튜디오 65에서 디자인한 것이 보카 소파다.
스튜디오 65는 1960-70년대 이탈리아의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디자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축 예술 스튜디오이다. 건축가, 시인, 미술가,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1965년 설립, 전위적인 활동을 펼쳤다. 보카 소파는 그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70년대 말 집단적 활동은 해체 국면을 맞았으나, 설립 멤버였던 건축가 프랑코 오드리토(Franco Audrito)와 몇몇은 스튜디오 65라는 이름을 유지하며 건축과 디자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디자인은 스튜디오 65에서 했지만, 제작은 이탈리아의 다른 가구 회사인 구프람(Gufram)에서 맡고 있다. 구프람 역시 60~70년대의 아방가르드한 예술과 실험적인 디자인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태와 소재에 대한 연구를 해온 회사다. 스튜디오 65가 디자인한 대담한 입술을 살릴 소재로 폴리우레탄폼 위에 광탄이 나는 빨간 고무 라텍스를 입혀 보카 소파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보카 소파뿐만 아니라 연작에 해당하는 핑크 레이디(PINK LADY), 다크 레이디(DARK LADY) 등도 선보이고 있다. 2016년에는 구프람 사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50개의 한정판 보카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핑크레이디는 빨간색이 아니라 더 영(young)하고 패셔너블한 핫핑크 (정확히는 푸시아 Fuchsia 컬러) 색상으로 만들어져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현대성을 더했다. 다크레이디는 검은 입술에 피어싱을 단 형태로, 반항적인 록 스타의 입술 같은 모습이다. 한 가지의 미(美)가 아닌 다양성을 더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흔히 육감적인 입술이 상징하는 섹시함, 풍부한 곡선으로 대표되는 여성미로 기억되고 있지만 보카 소파는 역설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스튜디오 65에서는 보카 소파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1960년대부터 패션 잡지, TV 등에서 반복해 강조되기 시작한 아름다움에 대한 특정 이미지, 미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비판하기 위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매 웨스트를 모델로 한 매 웨스트 립 소파를 염두해뒀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흔히 매 웨스트를 '섹시 스타'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고는 하는데, 이 단어만으로 그녀를 설명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매 웨스트는 (특히 여성에게) 보수적이던 1920년대부터 성(性)과 쾌락, 동성애에 대한 연극을 연기했을 뿐만 아니라 집필, 제작, 감독한 아티스트였다. 그만큼 가십과 논란에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지만, 끊임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여성이었다.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는 매 웨스트를 미국 고전 영화의 위대한 여성 스크린 레전드 15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입술을 본떠 만든 소파가 달리의 매 웨스트 립 소파였고, 이 소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것이 보카 소파인 것이다.
어쩌면 보카 소파가 여전히 섹시함의 상징으로, 특정 여성의 입술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자체가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미에 대한 고정관념과 집착이 계속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Furniture_ > 가구, 시대의 아이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던함에 피어난 따뜻한 감성, 파이미오 체어 (0) | 2022.08.22 |
---|---|
그 자체로 파리 풍경의 일부가 된 의자, A 체어 (0) | 2022.08.21 |
의자의 왕, 한스 베그너 - Y 체어와 발렛 체어 (0) | 2022.08.21 |
바우하우스 1기생, 마르셀 브로이어의 의자 (0) | 2022.08.08 |
시대를 앞서간 명작, 강철 왕관을 두른 LC2 (0) | 2022.08.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