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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ture_/가구, 시대의 아이콘

가구를 예술 작품으로, 론 아라드

by 잔망23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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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산업 디자인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디자이너, 론 아라드. 런던의 AAA(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저명한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졸업 후 피터킨, 톰 딕슨과 함께 1981년 가구 스튜디오 원오프 OneOff를 차려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다. 이후 발표한 로버체어(Rover Chair)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론 아라드는 어느날 고물 하차장에서 1960년 모델 로버 2000을 발견했는데, 이 폐차에서 가죽 의자 두 개를 뜯어내 관형 강철 프레임에 고정해 로버 체어를 만들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과 같은 레디메이드 개념을 디자인에 응용한 것이다. 더불어 폐기물을 사용해 산업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장 폴 고티에가 이 로버체어를 구매하면서 더욱 이슈가 되었다. 

이후 비판적인 언어와 예술성, 실험적인 소재로 현대 디자인의 대표 인물로 자리 잡게 된다. 1989년 Ron Arad Associates를 설립해 알레시, 아르테미테, 카르텔, 비트라, 모로소등의 대표적인 디자인 브랜드부터 삼성, LG, 아디다스 등 다양한 부문의 브랜드들과 협업했다. 

 

론 아라드의 세계는 곡선으로 대표된다. 뛰어난 조형미를 뽐내는 그의 가구 세계는 계속 진화한다. 초기에는 물질 문명과 후기 자본주의의 과소비를 비판하며 실험성이 짙은 가구들을 만들었다면,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좀더 실용적인 방향의 가구를 발표하고 있다. 파격을 이어가면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실 사용에 부담이 적은 가구들을 선보여 왔다. 좋은 디자인은 '목적에 충실한 디자인'이라는 아라드가 말처럼, 그의 디자인은 목적에 맞게 꾸준히 나아가는 중이다. 

 

 

 

1. 잘 단련된 의자 (Well Tempered Chair, 1986)

Well Tempered chair (1986), 출처: Vitra 홈페이지

 

번쩍거리는 철판, 심지어 얇은 판을 휘어서 만든 잘 단련된 의자의 첫 인상은 '실제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건가?'였다. 안락하게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디자인의 이 의자는 다이컷(die-cut) 기법을 적용해 1mm의 스테인리스 스틸을 레이저로 커팅, 재단했다. 등받이와 좌판, 팔걸이가 한 장의 철판을 구부려 모양을 잡았고, 각각의 덩어리는 볼트로 이어졌다. 

광택감있는 소재와 얇은 면이 의자로서 기능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지만, 잘 단련된 의자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유연성과 신축성으로 인체의 무게를 잘 견디어 낸다. 의자의 가장 큰 특징이 되는 소재의 특성을 반영해 '잘 단련된(Well Tempered)' 의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탄력성으로 잘 휘어지며 튼튼하다. 실제로 앉아보면 소재의 탄성력으로 인해 안락함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철의 표면은 스크래치로 마감 처리해 당황스러울만큼 반짝거린다. 잘 단련된 의자를 마주한 사람들이 느끼는 의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론 아라드의 위트있는 선택이 돋보인다. 

 

 

 

2. 더 빅 이지 (The Big Easy, 1989)

 

The Big Easy(1989), 출처: Moroso 홈페이지

 

The Big Easy. 국내에는 '뉴올리언스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던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애칭인 The Big Easy는 재즈의 발상지인 뉴올리언스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재즈 뮤지션들의 느긋하고 여유있는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의미라고. 아라드는 아무래도 이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시간을 탐닉할 수 있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미술 작품같은 독특한 외형과 거대한 풍채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양새이다. 그래서인지 마이클 잭슨과 자넷 잭슨의 듀엣 곡 '스크림' 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더 빅 이지가 등장한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우주선 안에 더 빅 이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 일로 론 아라드는 소송을 제기하지만, 더 빅 이지의 독창성을 알린 계기가 되었다. 풍성한 볼륨은 발포 폴리에틸렌과 폴리에스테르 섬유로 만들어졌다. 의자는 더 빅 이지 볼륨 시리즈로 패턴을 다양화하면서 변신하며 론 아라드의 대표적인 컬렉션이 되었다. 정자세로 앉기보다는 잔뜩 흐뜨러져 커다란 곡선에 녹아들어가게 되는 마법 같은 의자 더 빅 이지. 현재 모로소에서 생산되고 있다. 

 

 

 

3. 톰백 의자 (Tom Vac, 1997)

 

Tom Vac(1997), 출처: Vitra 홈페이지

 

조형성에 집중했던 론 아라드의 초기작들과는 달리 대량생산이 가능한 의자이다. 지금도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의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론 아라드의 대표작이다. 톰백 의자는 처음부터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제작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론 아라드는 디자인 잡지 <도무스>에서 의뢰를 받아 톰백 의자를 만들었다. 1997년 밀라노 가구 박람회 기간에 전시장을 위한 의자가 필요했던 것. 

아라드는 자신이 만드는 의자를 100개 이상 쌓아 올릴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톰백 의자의 특징적인 좌판 뒤쪽에 구멍이 탄생했다. 이 구멍은 장식적인 요소인 동시에 의자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게 해주고, 더불어 의자의 강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임스 부부의 DAR처럼 플라스틱 좌판에 금속 다리를 붙여 만들었다. 처음에는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었으나, 비트라가 제작을 결정하면서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가격도 합리적인 플라스틱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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