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구 회사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 가구에 대해 일자무식일 때였다. 회사에서 납품하는 어느 가구 편집숍에 외근을 나갔다가 멋진 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유려한 곡선, 안락한 착석감, 직관적으로 예쁘면서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외관. 가격표를 보고 얌전히 일어났지만 언젠가 꼭 내 방에 두겠다는 결심을 했더랬다. 그 의자가 프리츠 한센(Fritz Hansen)의 에그체어(Egg chair)였다.
스칸디나비아 가구, 북유럽 디자인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인 프리츠 한센은 1872년 시작되었다.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긴 역사의 브랜드다. 캐비닛 제작자였던 프리츠 한센이 코펜하겐에서 연 공방이 그 시작이었다.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의 아들 크리스티앙 한센이 사업을 이어받으면서 동료 건축가들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프리츠 한센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토넷(Thonet)은 1830년대부터 혁신적인 스팀 벤트 우드 기술로 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크리스티앙은 스팀 벤트 우드 기술을 연구해 노력 끝에 1915년 곡목 의자를 완성한다. 이를 인정받아 프리츠 한센은 스칸디나비아 시장에서 토넷의 제품을 독점 생산할 권한을 얻게 된다. 1930년에는 덴마크 최초의 벤트 우드 의자인 'DAN 체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1. 카레 클린트(Kaare Klint)
1936년 프리츠 한센은 카레 클린트가 베들레헴 교회를 위해 디자인한 '처치 체어(Church chair)'를 제작하게 된다.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기초를 다진 카레 클린트는 1923년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가구 학과를 만들었고, 한스 베그너, 보르게 모겐센, 폴 케홀름, 아르네 야콥센, 올레 벤셔 등 수많은 디자이너를 양성했다. 클린트는 인간과 전통을 중시했다. 그 영향으로 스칸디나비아 모던 디자인은 특유의 따뜻함으로 바우하우스나 모던 산업 디자인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처치 체어는 좌석 등받이에 뒷사람이 성경책을 꽂아둘 수 있는 선반이 있고, 다리 아래 공간에는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등 실용성을 갖추었다.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모델로, 여러 버전이 소개되었다.
2. 폴 케홀름 (Poul Kjaerholm)
프리츠 한센의 프리미엄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PK컬렉션의 PK가 바로 '폴 케홀름'의 이름에서 따온 철자이다. 소재에 집중해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해 모던한 디자인을 일찍부터 선보였던 천재 디자이너. 케홀름은 이전에 목재에 집중되어 있던 스칸디나비아 가구 디자인을 스틸로 구현했다. 22살의 젊은 나이로 프리츠 한센에 입사했다. 그가 프리츠 한센에서 보낸 기간은 1년 뿐이지만, 폴 케홀름은 아르네 야콥센과 함께 프리츠 한센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클린트 학교 출신이고, 한스 베그너에게 사사 받은 케홀름은 공정 중 일부는 반드시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하는 요소를 두었다. 주로 스틸을 뼈대로 삼고 그 위에 가죽, 목재, 유리, 대리석 등 다양한 소재를 결합했다. 재료 본연의 성질을 드러내면서 구조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구현한 그의 작품들은 타임리스한 세련미와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3. 베르너 판톤 (Verner Panton )
프리츠 한센은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들과도 손을 잡는다. 얼핏 생각했을 때 프리츠 한센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의 마법사 베르너 판톤도 프리츠 한센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아르네 야콥센의 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며 엔트 체어의 개발에 참여했던 판톤은 1955년부터 1980년대까지 프리츠 한센과 협업을 이어나갔다. 스틸튜브와 플리스틱 등 다양한 소재를 도입한 판톤은 그 특유의 팝아트적인 색감과 유기적인 형태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특히 앤트 체어에 영향을 받아 하나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유기적 조형의 디자인 실험을 이어났는데, '팬토노바(Pantonova, 1971)', '시스템 1-2-3(System 1-2-3, 1973)'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Furniture_ > 가구, 시대의 아이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 클래식,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인 - 에로 사리넨 (0) | 2022.12.31 |
---|---|
가구를 예술 작품으로, 론 아라드 (0) | 2022.12.14 |
미드 센추리 모던을 좋아하신다구요? -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2) (0) | 2022.10.12 |
미드 센추리 모던을 좋아하신다구요? -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1) (0) | 2022.10.06 |
특별한 아름다움, 마르셀 반더스와 Moooi (0) | 2022.10.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