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더니즘 이탈리아 건축과 디자인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가 1978년 색색의 점들로 화려한 안락의자를 발표했다. 모던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풍성한 바로크식 디자인에 화가 폴 시냑(Paul Signac)의 점묘화가 떠오르는 점들이 찍힌 이 의자의 이름은 '프루스트 의자(Proust chair)'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존경을 담아 작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조합으로 우아하면서도 키치하고, 장난스러우면서도 품격있는 의자가 탄생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는 안티디자인과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을 이끈 인물이다.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도무스>, <카사벨라> 등 명망있는 건축 및 디자인 잡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디자이너와 이탈리아 산업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이탈리아 디자인계와 산업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멘디니는 1976년에는 에토르 소트사스, 안드레아 브란지, 파올라 나본네 등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스튜디오 알키미아(Studio Alchimia)를 결성해 급진적인 디자인 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말, 에토르 소트사스는 그룹 내에서 견해 차이를 줄이지 못하고 알키미아를 탈퇴해 멤피스 그룹을 결성하게 된다.) 스튜디오 알키미아에서 멘디니는 '리디자인(Re-design)'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구체화하는데, 프루스트 의자가 바로 그 대표작이다. 1976년 까시나와 함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모티브로 패브릭 패턴을 디자인했던 작업에서 창안해 만들어졌다. 또 미술과 디자인을 분리하는 것을 반대해 회화 기법을 선택해 소파에 구현했다.
그는 모더니즘을 따르는 디자이너들이 과도하게 새로운 것에 집착하며 전통과 역사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기능과 상업주의에 가려졌던 감성과 휴머니즘을 되새길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디자이너가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이 탄생되어버렸다." 고 말한 멘디니는 "이제 독창성은 없다"라고 선언했다. '지극히 따분한' 혹은 '리다자인'이라는 디자인 코드는 독창성 대신 디자인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에 있는 것들을 조합하고 변형해 새로운 정신을 부여하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 앤티크 의자에 점묘화를 조합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만들어 낸 프루스트 의자는 멘디니가 고안한 디자인의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실험적이고 기능만을 중시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유머러스함과 친근함으로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한 그의 정신은 장난감 같은 외형으로 유명한 와인 오프너 '안나 G'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웃고 있는 소녀 같은 와인 오프너는 멘디니가 여자친구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고 디자인했다고 한다. "삶은 아름다운 것과 연결되어 있고, 그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라는 멘디니의 말을 곱씹어보게 한다.
1989년 동생인 건축가 프란체스코 멘디니(Francesco Mendini)와 함께 아뜰리에 멘디니를 열고, 일본 히로시마 항구의 기념탑,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 스위스 아로사 카지노, 이탈리아 빌라 코뮤날레를 위한 세 파빌리언 등 건축 프로젝트를 디자인했다. 멘디니는 말년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까르띠에, 에르메스, 슈프림, 스와로브스키 등 다양한 업계의 하이엔드 브랜드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또 다양한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도 있었다. 롯데카드, SPC그룹, LG, 한샘 등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했다. 점점히 찍힌 패턴 대신 한국의 조각보를 모티브로 한 패턴의 프루스트 의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조각보 장인 강금성 장인과 함께 작업한 조각보 프루스트 의자는 2015년 프랑스 생테티엔 국제 디자인 비엔날레에 전시되어 동서양의 조화, 공예와 디자인의 크로스오버를 선보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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