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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niture_/가구, 시대의 아이콘

모던함에 피어난 따뜻한 감성, 파이미오 체어

by 잔망23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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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체어 41, 파이미오(1932), 출처: 아르텍(Artek) 홈페이지

 

알바 알토(Alvar Aalto)는 핀란드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다. 북유럽 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헬싱키 공업전문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1963년부터 1968년까지 핀란드 아카데미의 회장을 역임했고, 1976년에는 우표에 그의 얼굴이 인쇄됐을 정도로 핀란드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디자이너이다. 바우하우스의 영향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성형된 합판을 사용해 가구를 설계했으며, 가볍고 견고하며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이미오(Paimio) 요양원은 1929년 공모전을 통해 건축 디자인을 모집했다. 공모전에 당선되어 요양원을 건축하게 된 알바 알토는 설계한 공간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직접 디자인했다. 가구와 조명뿐만 아니라 문 손잡이까지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작업한 결과물 중 하나가 파이미오 체어이다.

 

파이미오 요양원은 지금은 일반 병원이지만, 개원 당시는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소였다. 이 의자는 결핵 환자들의 휴게 공간에 놓인 의자였다. 알토는 차가운 속성의 금속보다는 목재가 환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능적으로도 합판은 열전도율이 낮고, 빛을 반사하지 않아 불편할 일이 없으며, 소리를 흡수해 공간에 안정감을 준다.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는 겨울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기후의 나라다. 금속관을 선택할 경우 겨울에는 환자들이 차갑게 얼어붙은 의자에 앉게 될 심산이 컸다. 또 당시 핀란드는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아 철을 구하기 어려웠다. 알토는 핀란드에서 많이 나는 자작나무를 소재로 선택해 목재를 합판으로 성형한 후 의자를 제작했다. 곡목기술을 연구하여 1932년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형태의 의자를 완성했다. 알토가 만들어낸 합판 성형법은 '적층 성형합판' 기법이라고 불린다. 자작나무를 얇게 켜 낱장을 붙여 합판 형태로 만든 뒤 원하는 모양으로 휘는 기술이다. 약 6.3mm로 얇은 두께이나 매우 견고하다. 이 기술을 발명함으로써 핀란드를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4개국이 벤트 우드(곡목) 의자의 전통을 확립하게 된다. 

 

합판을 소재로 한 파이미오 체어는 레커도장으로 마무리한 좌판과 등받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팔걸이와 다리도 연결되어 있어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가 특징이다. 등받이가 110도 정도로 약간 누워있는 파이미오 체어의 등받이는 결핵 환자가 가슴을 펴고 일광욕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그래서 앉는 면을 검은색으로 칠해 햇빛을 흡수해 따뜻해지도록 했다. 당시 결핵의 유일한 치료법은 맑은 공기를 듬뿍 들이마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등받이 부분에 가로로 뚫린 홈은 목재의 뒤틀림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다리와 연결된 팔걸이는 환자가 잡고 일어나기 편하도록 고안되었다. 모던한 디자인의 파이미어 체어는 의자를 사용할 환자를 향한 알토의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깊이 배어 있다. 

 

1920년대 바우하우스를 필두로 금속관을 이용한 가구들이 나오면서 강철파이프는 당대 가구의 주요 소재였다. 그러나 알토는 목재로도 단순하고 모던한 가구를 합리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파이미오 체어를 통해 보여줬다. 이를 시작으로 1930년대는 합판 가구가 크게 유행하게 된다. 사실 당시 강철 소재의 디자인 가구들은 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데 비해 소비자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출시하자마자 국제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파이미어 체어의 예를 보며, 모던한 형태를 유지하되 목재를 쓰는 가구에는 응답하는 소비자들을 확인한 디자이너들은 너도나도 합판을 소재로 선택했다. 1940년대 임스 부부의 LCW와 1950년대 아르네 야콥센의 세븐 체어도 합판으로 만들어졌다. 파이미어 체어가 디자인사의 흐름을 일시에 바꾼 것이다. 목재 가구의 전통과 모던한 디자인의 결합을 이뤄낸 알토의 가구가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소재와 기능적 실용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구를 사용할 사람과 환경을 세심하게 고려한 따뜻함, 그리고 배려가 진하게 묻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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